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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4 - 2008. 8. 31

읽점 2008. 9. 23. 11:29


[발견]

오늘, 아주 오랜만에, 교회 동생을 만났는데 기분이 썩 좋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저, 내가 돌봐야 하는 후배였고, 그 친구가 사춘기를 겪을 때쯤에는 교회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종종 걱정이 되었고요. 청년이 되어 돌아온 그는 뜬금없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우리를 뜨악하게 하더니 몇 년 후에는 어느 신학대 신학과에 들어갔다 했지요. 왜, 무슨 생각으로, 굳이 신학을 하겠다는 거냐고 따져 묻는 저에게 그는 별 뚜렷한 대답은 피하면서, 왜 그렇게 신학 하는 것을 싫어하느냐고 반문했었어요.

그 친구를 만났어요. 4학년 2학기. 그는 다시 한 번 숨고르기를 하고, 과연 이 길을 갈 것인지 고심하고 결정해야 할 때라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보석 같은 후배가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이 속으로 연신 터져 나왔어요.

한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되는 건 언제일까요. 그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말이지요. 평생을 두고 때때로 만나 인생이야기를 나눌 동지가 되어도 좋겠다 싶은 가치를, 저는 오늘 처음 발견했거든요. 그만큼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후배도 이제야 철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인생은 길고, 동지를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고, 그런 사람을 알아보게 되는 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때가 있습니다. 훌륭한 동지였지만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만난 사람도 있고, 내가 보기엔 심하게 철딱서니 없고 별로 기대할 만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그의 안에 숨어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만남에서 상대방의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과 은혜의 시간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이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내가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2008.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