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09년 2월호 도시락에 쓴 글

읽점 2009. 1. 13. 12:36

작년 연말, TV에서는 프로그램마다 한해를 결산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허기도 채우고 머리도 비울 겸, 먹을 것을 좀 챙겨가지고 TV 앞에 앉았다. W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역시 연말특집인 모양이었다. 그 중에 ‘마누엘 이야기’라는 꼭지가 있었다.

마누엘은 중남미 어느 나라에 사는 열 살 남짓한 남자아이다. 가난한 그 동네 아이들은 근처 맹그로브 숲의 늪지에 들어가 가재나 물고기 같은 것을 잡아다 팔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벌써 기억이 흐려져서 그가 잡으러 들어간 것이 가재나 게였는지, 물고기였는지 나무뿌리였는지 잘 모르겠다.) 맹그로브 숲이 워낙 빽빽하여 성인들은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수면 아래로 손을 넣어 더듬어 물고기를 잡기 때문에 날카로운 나무뿌리에 찢기는 일이 다반사에, 습한 밀림의 독충들을 쫓기 위해 담배를 피워대는 것 역시 필수라고.
이런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후, 시청자들 중 몇 사람이 마누엘을 돕겠다며 후원금을 보내왔고, 후원회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 후원금 덕에 이제 마누엘은 맹그로브 숲으로 일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되며,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 아이들이 전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 마누엘만 도움을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람, 이런 딴죽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 때쯤) 마누엘 후원회의 활동이 알려지자, 그곳 현지에서도 후원회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한인들이 중심이 된 듯한 이 후원회는 마누엘뿐 아니라 점차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혜택이 확산되도록 하고 있고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그 마을 자체를 바꿔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특히 세계 곳곳의 생활상을 보여주거나 사회와 경제의 숨은 이면을 설명해주고 약자들의 설운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의 다큐는 종종 ‘불편한 진실’이지만, 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껴져서 열심히 보고 많이 마음 아파한다. 정말, 기도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마누엘 이야기의 그 후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저 후원회원들처럼 방송을 보고 곧장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되는데 나는 너무 많은 핑계와 불필요한 신중함을 들어 행동을 미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늘 뭔가 거창하게 변혁적인 삶, 급진적인 제자의 삶을 꿈꾸면서도 정작 그 실현은 결혼 혹은 독립 이후로 미뤄두고 있었다. 구조적인 악, 사회관습으로 굳어진 악에 대해서는 탄식만 할 뿐 어떤 대안도 없었다. 변혁의 필요와 문제의 절실함에 대해서는 애써 배우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오늘 여기에서의 변혁은 없었던 거다. 곰곰 돌아보니 지난 봄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때도, 같이 묻어갈 기회를 찾다가 결국 다른 일정이 겹쳐 그 현장에 못 갔고, 매년 있는 소록도 성탄절 행사도 주일의 사역팀에 무리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조차 없다. 옆에서 누군가 강력하게 나를 부추기고 찔러대면 마지못한 척 동참하여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건만, 그렇지 않으면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면서 더 좋은 기회와 더 환상적인 멤버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섬김의 자리에 가기를 기뻐하고 독려하는 열정적인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어느새 나는 변혁적인 삶에 관한 책만 읽고 이론적으로만 관심과 기대가 많을 뿐, 실제 현장은 밟아본 적이 없는 그런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결혼을 언제 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변혁적인 삶의 방식은 나에게 그저 아련한 로망일 뿐인 것이다.

삶의 방식. 삶의 방식은 나의 오랜 숙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복음진리에 합당한 삶의 방식을 개발하고 익힐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일하는 것, 먹는 것, 시간을 사용하는 것, 자원을 이용하는 것, 그리고... (극단적 개인주의에 빠져 잊고 있었지만)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평화롭고 아름답고 고상하고 진리에 근거했고 사랑이 깔린 라이프스타일.
인생이 결코 고상하고 우아하기만 할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내 일상에서의 더 옳고 아름다운 선택들이 하나님의 세계에 털끝만큼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
마누엘 이야기를 마음에 담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환상 속 세계를 확장하거나 심화하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나의 소망을 현실 속 일상에 뿌리내리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기 위해서다.

2009년은 내 말과 관념으로만 있던 ‘변혁’이 내 일상으로 내려앉게 되기를, 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내 몸에 새기게 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