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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기엔 너무 많이 먹은 나이.

읽점 2009. 3. 26. 13:18
무릎팍도사에 장서희가 나왔다. 별로 관심 있는 인물이 아니라 ebs에서 하는 다큐10+ '제국의 건설-로마 2'를 재미있게 보고서, TV를 끄기 전 다시 한 번 채널 탐색. 아직 하고 있었다. 드디어 주제는 막장,으로 넘어왔다. 도사 曰, "막장 드라마라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가 뭐라고 답했을까? 어쩜 당연하고 뻔한 얘기. "너무 속상하죠. 얼마나 열심히 연기하고 다들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있는데.. 간혹 무리한 설정이 있다고 해도, 드라마는 드라마로서 평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류의 답을 했다. 정확한 발언내용을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정말 고생하고, 노력해서 (드라마를) 하고 있는데 막장드라마라고 얘기를 하시니까 속상하다" "정말 우리 드라마가 막장드라마라면 그렇게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 주시겠느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극 전개상) 다소 과도한 표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이니까 그냥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이걸 그가 순진해서라고 해야 하나.. 그는 서른일곱인가 여덟이라는데.
마흔을 바라보는(혹은 넘긴) 배우가 간혹 설정상, 이십대 혹은 심할 경우 십대 고교생 연기를 할 때는 풉, 우습긴 하지만 견딜 수 있다. 곧 좀더 정상적인 나이로 돌아올 테니까.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그러나 마흔을 바라보는(혹은 넘긴) 배우가, 저토록 마냥 순진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피력할 때는 쯧, 불쌍해진다.
아 물론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사실 저도 좀 심하다고 생각해요. 작가 선생님, 좀 개연성 있게, 현실적으로 써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므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든 반응이 좋으면 좋은 드라마라는 건가? 도대체 왜 막장이라고 불리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고생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명품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드라마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지, 자기가 하고 있는 드라마가 얼마나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도무지 들여다볼 생각을 안했으니 저리 순진할 수 있는 거겠지.

마치, 순진한 기독교인들을 보는 듯하다. "왜들 그렇게 기독교를 미워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종교는 종교일 뿐이잖아요. 정말 기독교가 막장이라면 우리나라의 20%나 되는 기독교인들이 왜 교회를 떠나지 않겠어요? 종교는 종교로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사람들의 반응이 있고, 내가 열심히 하고 있으므로 이 일이 옳고 좋은 일이라는 착각을 동일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순진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장서희가 잘 보여주었다.


장서희는 안습이었다. 청순가련 순진무구 컨셉은, 그의 나이 때문인지 어색하고 억지스러우며 안타까웠다.
저 나이를 먹도록, 저런 세계관밖에 갖지 못하였는가. 저 나이를 먹고도, 저런 컨셉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바랄 정도로 가치관이 미성숙하단 말인가.
나이를 먹는 것은, 무섭다. 나이를 먹는 일은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 장서희 발언을 찾기 위해 검색하다 보니 씨네21에서 막장드라마의 모든 것이라는 특집기사를 1월에 실었더라. 연예인들은 씨네21같은 잡지 안 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