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보내는글

공동체 최고의 요리 비결

읽점 2010. 2. 1. 20:36

2010년 2월호 도시락 ․ 연필

 

공동체 최고의 요리 비결

 

<남극의 쉐프>가 일러준 비법

남극의 돔 후지 기지(Dome Fuji Station). 새하얀 평원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인공의 건물이다. 볼품없는 철문이 덜컹 열리고 한 사람이 뛰쳐나온다. 그리고 그를 뒤쫓는 몇 사람. 눈밭을 허우적대며 달려가다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 넘어지고 만다. 그를 붙잡은 대장 격의 인물이 그를 다그치며 말한다. "딴 데 갈 데도 없다구.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ㅡ이게 영화의 첫 장면인데, 결국 이런 우울한 메시지가 현실인가 싶어 급히 메모해둔다.

해안의 쇼와기지에서 안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일본인 남자 8명이 1년 반 동안 생활하는 이야기다. 빤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고 부딪히면서 생기는 일상적 에피소드를 일본영화답게 아기자기하고 훈훈하게 엮어냈다. 기상학자, 빙하학자 등 전문연구원과 통신 담당, 차량 담당 등 전문기술자들, 그리고 의사와 조리사로 구성된 관측대원들은 20대 청년부터 중년의 아저씨까지 연령대도 폭넓고, 그러다 보니 가정사도 각양각색이다. 대학원생 청년은 종종 통화하던 일본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생일을 맞아 흥에 겨워 집에 전화를 걸었던 무뚝뚝한 연구원 아저씨도 냉랭한 식구들의 반응에 마음이 쓰라리다. 이쯤 되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인 쉐프 양반의 가정도 위태로운 것이다. 1년 반이라니! 쉽지 않은 시간이니까. 오! 안 돼! 그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얼마든지 많다구! 제발, 이제 그만! ... 다행히도 이 영화, 훈훈하다.

영화 중간에 메모하고 싶은 말이 한 번 더 나왔다. 이런 류의 영화에 흔히 나오는 대사긴 하지만. "힘들어하는 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줘 보세요. 맛있는 걸 먹으면 힘이 나니까요." ㅡ내가 그의 고민 해결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함께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음식을 대접해주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 나를 위해 기꺼이 수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버티기'나마 조금은 더 수월해지는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건진 메시지는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와 '그를 위해 작은 수고를 하세요'다. 얼핏 보기에 상반되는 듯한 메시지지만, 사실 우리의 빈약한 공동체 안에서 오래도록 동역하기 위한 두 가지 비밀이 아닐까.

 

실망스런 공동체에서 만족하는 비결

누군가는 공동체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세요. 공동체의 리더들도 사실 답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공동체의 비전을 이루기 원한다면 스스로 강해지세요." 오우,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냉소적인 건 아닐까? 공동체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굳이 함께 있을 필요는 뭐지?

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공동체입니까? 좀더 투명하게 소통하고 개인들을 든든히 붙들어주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없으면 너무 힘들어요." 맞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의 사정 또한 너무 빤해서,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할 만한 역량이 안 된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공동체의 한계를 고스란히 자기 자신의 한계로 받아들여 돌파하려 애쓰지 않는 이들도 있는 걸 부인할 순 없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건강한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은 어느 쪽에 있을까? 서로 대립하는 듯한 두 사람의 비평 혹은 제안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에, 아마도 영화 <남극의 쉐프>를 보면서 두 가지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영화 속 두 메시지의 공존은,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도 '스스로 강해지는 것'과 '서로를 돌아보고 챙기는 것'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에 용맹정진하는 한편, 공동체 안에 함께 있는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훈훈함이 공존한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공동체 생활이 가능하진 않을까?

 

양파 한 뿌리의 위력

2009년 마지막 주이자 2010년 첫 주였던 연말연시 연휴 기간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 2, 3권을 읽었다. 다 읽으면 충분히 뿌듯할 만큼 두툼했기 때문인데, 과연 그랬다. 느낀 점은... '역시 고전의 포스는 남달라!' '도스토예프스키, 200년 전의 사람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런 통찰을!'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이란! 표도르와 표트르는 다른 이름이었군. 알렉세이라는 이름은 별론데 알료샤라는 애칭은 맘에 드는걸' 등등 많지만^^ 여기서는 양파 뿌리 얘기를 하고 싶다.

이기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인물 그루셴카가 들려준 우화의 내용은 이렇다. 이기적인 욕심쟁이가 죽어서 지옥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평생에 한 유일한 선행ㅡ거지 여인에게 텃밭의 양파 한 뿌리를 뽑아서 준 일ㅡ을 기억해서 지옥에 있는 그에게 양파 뿌리를 붙잡고 올라올 수 있게 해주셨다. 거의 다 올라오는가 했는데, 지옥의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매달려 함께 올라가려는 것이다. 이기적인 욕심쟁이는 당연히 '이러다가는 양파 뿌리가 끊어져 나도 다시 지옥에 떨어지겠는걸' 싶어 자기에게 달라붙은 사람들을 발로 차 떨어트린다. 그러자 양파 뿌리가 툭 끊어져 아무도 건짐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

심술쟁이 그루셴카는 물론, 착한 알료샤조차 자신의 선행이 '양파 한 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그런 초라한 도움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베푼다면 어쩌면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해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건지실지 모른다. 물론, 양파 한 뿌리라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구원론에 관한 것이 결코 아님을 밝혀둔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듯 보이는 나들목 공동체, 그리고 목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뭔가 부실하고 못미더운 가정교회 공동체. 2010년에 이 공동체들이 계속 건강하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 운동원인 내가 그 속에서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동시에, 함께 한 이들에게 양파 한 뿌리라도 건네는, 맛있는 음식 한 끼라도 대접하는 수고를 즐거이 껴안아야겠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약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강자인 것은 나나 다른 이들이나 마찬가지이니, 강자와 약자를 따지려들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