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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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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마는 이스라엘과 접경한 팔레스타인에서 50년이 넘도록 레몬농장을 가꾸며 살아왔다. 다 자란 자식들은 결혼을 했거나 돈 벌러 미국에 가 있거나 등등, 살마는 혼자 산다. 10여 년 전에 남편을 잃었으니 어리던 자녀들을 키우고 결혼시키는 것도 모두 다 혼자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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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살마의 집 국경 건너편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온다. 요란법석을 떠는 것이 대단한 사람이 오나 했더니 이스라엘 신임 국방장관이란다. 수많은 경호원들과 이런저런 첨단경비시설에, 감시탑까지 세운다. 살마로서는 이런 소란이 뜨악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마는 히브리어로 된 편지를 받는다. 히브리어를 아는 남편의 옛 친구를 찾아가니, 국방장관을 이웃으로 둔 덕분에 레몬나무를 다 베어버리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며 그나마 보상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라고 번역해 준다. 슬픔을 느끼는 살마에게, 이렇게 부당하게 땅과 집을 빼앗긴 사람이 한둘이냐고 차갑게 내뱉는다. 그리고, 보상금은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인다. 팔레스타인의 자존심이겠지만, 그리고 살마도 보상금이 아쉬운 건 아니었지만, 가난한 살마로서는.. 야박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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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1.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부인인 미라. 그는 이스라엘의 강경파 및 국방장관인 남편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만 남편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늘 경호원에 둘러싸여 있고, 아무 말도 못한 채, 국경 저편의 살마를 애틋하게 쳐다본다. 그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아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도 마음으로는 무척 미안하지만 그저 안쓰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문득, 아무 액션도 없는, 마음으로만 늘 미안해하는 그림자 같은 이웃. 바로 나, 그리고 우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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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2. 사위의 소개로 찾아간 변호사 지아드. 그는 살마를 보고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청해서 변호를 해준다. 아마.. 살마가 이뻐서인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미의 기준이 어찌되는지 모르겠다. 살마가 10살 이상 많은 것 같지만 뭐, 지아드는 살마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가 썩 훌륭한 변호사인지는 잘 안 드러나지만 그는 성실한 태도로, 진심으로 의뢰인을 지지하면서 변호를 해나간다. 살마가 그에게 기우는 건 당연하다. 그는 거의 유일한 이웃이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거나 불순한 이유(마음이 끌려서..같은)에서였다고 해도 영화에서 살마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이웃이며 살마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변호)으로 수임료도 따로 받지 않고(재정)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웃3. 죽은 남편의 친구들. 그들은 평소에 살마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 살마가 히브리어로 된 편지를 읽기 위해 남자들이 버글대는 카페에 찾아갔을 때도 살마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기보다는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어려움 속에 살고 있어. 당신 문제는 당신 몫이야’ 식의 태도를 보인다. 동병상련이라 했건만, 그 병조차 ‘긴 병에는 효자 없다’는 말이 통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에게 지루하도록 빼앗기고 쥐어터진 끝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서로의 아픔에 대해서조차 너무나 일상적이고 지긋지긋한 또 하나의 부스럼처럼 느끼게 되었나 보다. 이건 뭐,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살마가 항소를 위해 지아드와 함께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자 동네 소문이 안 좋아진다며 대뜸 살마를 찾아왔다. 남편의 명예 운운하며 행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이슬람 전통 문화를 생각하면 수긍할 수도 있지만.. 10년이나 지났고! 그렇게 지겹도록 이스라엘 사람들과 맞붙어 사는데도! 인권이라든지 여권이라든지 하는 개념이 전혀 소통이 안 된단 말인가? 하긴 딱 붙어 사는 살마와 미라의 집을 비교해 보면.. 최첨단 초호화 시설을 갖춘 미라의 집과 폭탄 맞아 마무리도 허술하고 문짝조차 허술한 살마의 집은 동시대, 같은 지역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불균형하다. 아무튼, 전통과 사람들의 시선과 자기중심적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옥죄는 유형의 이웃. 이런 사람도 이웃이라 할 수 있을까. 엄연히 관계라는 끈이 존재하는데도(죽은 친구의 아내) 평소에는 그 관계를 전혀 돌아보지 않다가 시끄러운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그 관계를 짐처럼 생각하며 나서서 훈계를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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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4. 이 사람도 이웃이었군. 잊어버리고 있었다. 타마 게라?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저널리스트다. 덕분에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고 다닌다. 누군가 유명인사를 인터뷰해서 미라의 남편에게 호감을 산다. 미라와는 친한 친구 사이라서 미라의 고민을 다 듣고, 이 소심한 친구를 위해 그 이야기를 신문에 실어준다. 타마 덕분에 미라는 불거진 문제의 책임을 조금 용감하게, 남편 앞에서 진다. 그리고 타마는, 살마에게도 찾아간다. 살마의 이야기를 싣는다. 그래,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아도 될 때 훨씬 더 정직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타마는 친구인 미라의 안전(가정적 평화도 포함하여)이나 안면이 있는 나본 국방장관의 입지 때문에 입이나 펜이나 발걸음을 조심하는 소심함 따위는 없다. 그런 자유분방함이 타마를 그답게 만드는 거겠다.




살마의 이웃들. 우리는 흔히 미라처럼 선의를 마음에 품은 채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착한 눈길만 보내고 있다. 혹은 평상시에는 무심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를 이용한다. 혹은 지아드처럼, 이러저러한 관계로 함께 묶여서 어려움을 같이 당하고 같이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다. 혹은 타마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옳은 것을 찾아 주어진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겠다.

나는 내 이웃들의 이웃이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이웃일까. 미라처럼 너무 매여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살마의 남편의 친구들처럼 이웃의 마음에 칼질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용감하게 함께 곤경에 처하고 내게 있는 것으로 돕고, 그도 안 되면 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싶다.



* 결국 대법원의 판결대로 시행되고, 분리장벽도 모두 설치되고 난 후, 미라는 남편을 떠나고 최첨단 호화 집에 홀로 남은 나본 국방장관은 한낮에도 자동 창막이 시설 덕에 어둠 속에 앉아 고독을 씹을 수 있다. 그가 철제 가림막을 올리자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전의 레몬이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 대신 코 앞에서 하늘로 솟은 콘크리트 분리장벽이다. 뒷마당을 딱 가리고 선. 삭막하기 그지없는 콘크리트 벽. 그 너머로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밑동 30센티만 남고 잘려나간 레몬나무들 사이로 자유롭게 다니며 나무를 돌보는 살마와 그 손길에서 다시 가지와 잎을 내기 시작한 상처 입은 레몬나무들이 햇볕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오 불쌍한 나본. 최첨단 호화 시설에 삭막하게 갇혀 있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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