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으로 비상하며 놓친 것들에 관하여 임시걸 joyful.editor@gmail.com 필리핀 세부로 패키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주로 호텔 안에서 쉬고 놀고 먹고 하다가 중간중간 스노클링 등의 활동을 하기 위해 밖으로 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완벽한 환상의 공간인 호텔을 벗어나 허술한 트럭에 실려 해안가의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동안, 그곳 주민들이 사는 거리를 지나는 것은 당연하다. 호텔 안과 밖의 엄청난 차이에,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 탄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동네 아이들은 흙바닥에 나무로 지은 집 안팎에서 놀다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차에 동승한 젊은 엄마와 아이의 대화는 안 그래도 여행 내내 불편했던 내 마음을 휘저어놓았다. “OO야, 저 사람들 보니까 어때?” “불쌍해..
2010년 2월호 도시락 ․ 연필 공동체 최고의 요리 비결 가 일러준 비법 남극의 돔 후지 기지(Dome Fuji Station). 새하얀 평원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인공의 건물이다. 볼품없는 철문이 덜컹 열리고 한 사람이 뛰쳐나온다. 그리고 그를 뒤쫓는 몇 사람. 눈밭을 허우적대며 달려가다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 넘어지고 만다. 그를 붙잡은 대장 격의 인물이 그를 다그치며 말한다. "딴 데 갈 데도 없다구.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ㅡ이게 영화의 첫 장면인데, 결국 이런 우울한 메시지가 현실인가 싶어 급히 메모해둔다. 해안의 쇼와기지에서 안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일본인 남자 8명이 1년 반 동안 생활하는 이야기다. 빤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고 부딪히면서..
2010년 1월호 도시락 - 연필 강자와 약자 오호, 놀라운 발견. 좌담회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으며 타이핑을 한다. 역시 말과 글은 달라서,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글로 옮기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나는 전체적으로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다. 원래 기록을 맡았기 때문인데 오기로 한 패널이 못 오게 되어 일정 부분 패널 역할을 한 것이다. 가장 말을 많이 한 사람은 나이와 연차가 꽤 있는 남자 패널.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 허리를 잘라먹고 들어와서는 큰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 하지만 논리적이거나 완성도 있는 문장은 아니다. 문장성분이 뒤죽박죽이기 일쑤요, 주어부만 몇 개째 나오다가 술어부는 흐지부지되어버려 말이 되게 만들려면 내가 작문을 해야 할 판..
첫 시간 화요일 저녁시간인데 어떤 분들이 오실까 자못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거의 다 아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자매들. 첫 시간이라 자기소개와 함께 이 세미나를 신청하게 된 이유, ‘여성’과 관련한 평소의 생각들을 나눴다. 다양한 성장배경, 다양한 개인적 성향, 다양한 경험이었지만 어떤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때로 눈에 띄는 방식으로, 폭력적으로 작동하기도 했고 때로는 은근한 유리천장이기도 했다. 내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계일 수도 있고 몸이 머리를 배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들 안의 여성, 교회 안의 여성, 한국 사회 안의 여성은 자유롭지 못했다. “회장이 왜 남자여야 하나요?” 주일학교 중고등부 시절, 내년 임원단을 뽑는 총회날이었다. 목사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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