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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여성> 첫 시간

화요일 저녁시간인데 어떤 분들이 오실까 자못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거의 다 아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자매들. 첫 시간이라 자기소개와 함께 이 세미나를 신청하게 된 이유, ‘여성’과 관련한 평소의 생각들을 나눴다. 다양한 성장배경, 다양한 개인적 성향, 다양한 경험이었지만 어떤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때로 눈에 띄는 방식으로, 폭력적으로 작동하기도 했고 때로는 은근한 유리천장이기도 했다. 내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계일 수도 있고 몸이 머리를 배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들 안의 여성, 교회 안의 여성, 한국 사회 안의 여성은 자유롭지 못했다.

 

“회장이 왜 남자여야 하나요?”

주일학교 중고등부 시절, 내년 임원단을 뽑는 총회날이었다. 목사님은 후보 추천을 받으면서 후보 자격이 ‘내년에 고2가 되는 남학생’이라고 하셨다. 어라? 회장은 왜 남자여야 할까? 무슨 이유와 근거가 있길래? 나의 질문에 목사님은 (감사하게도) 잠시 생각해 보신 후 “남녀 상관 없이 내년에 고2가 되는 세례교인”으로 정정해주셨다.

많은 교회와 단체에서 ‘회장-남자, 부회장-여자, 총무-남자, 회계/서기-여자’의 조합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 회장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자격은 뭘까? 공동체에 대한 깊은 이해, 애정, 리더십, 넓은 시야와 균형 잡힌 안목 등등. 그런 자격과 능력 중 여자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고 남자들은 갖출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 모든 남자가 회장감은 아니듯^^; 모든 여자가 회장감이 못되는 것도 아닐 텐데.

 

몸이 머리를 배신할 때

“어디, 여자가……” “여성스럽지 못하게 이게 뭐니” “사내자식이……” 자라면서 익숙하게 들어온 이런 말들은 어느 새 내면화되어서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한계 안에 나 자신을 가둬버린다. 남자 혹은 여자라고 해서 꼭, 전부, 반드시, 항상 그런 것은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왠지 남자들에게 밥 대신 빵을 먹이는 게 미안하고, 가사를 ‘도와’주는 게 고맙고, 여자 대통령은 상상이 잘 안 되고, 의사나 변호사나 목사라고 하면 일단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라고 하면 일단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습관처럼 주도권을 남자에게 넘겨버리거나 기대한다.

몸에 익은 사고습관이 튀어나올 때마다 민망해진다. 고정된 성역할에서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이전 세대에는 확고부동하게 보였던 남녀의 역할이 우리 세대에는 많이 허물어지고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몸과 머리의 분열을 겪고 있다. 다음 세대가 더욱 자유롭게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좀 더 세심하게 언어와 행동을 다듬어가야 하지 않을까.

 

매주 화요일 저녁,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성경과 여성> 시간에 나눈 이야기는 ‘여성’을 중심으로 마구 뻗어나가다가 항상 시간에 쫓겨 중단되어야 했다. 속에 있던 설움과 한을 충분히 풀어내지도, 치열한 탐색을 통해 명확한 논리적 결말을 찾아내지도, 어떤 구체적 액션플랜을 내놓지도 못했다. 다만, 소통의 가능성을 엿보았고 더 깊이 나눌 이야기들이 많이 있음을 감지했고 우리가 서로에게 힘과 의지가 되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과 갈망들이 나들목 안에 숨어 있으며, 우리의 논의가 이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함을 보았다.

 

바울의 가르침

교회 안에서 여성을 억압해온 성경의 문제 본문들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오해와 역사적 과오들을 걷어내고 나면 바울의 가르침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로 정리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그리스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하나로만 규정되며, 그러므로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 안에서 모든 관계가 새로워지며 이 복음이 거침없이 전파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이 투명하게 복음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디도서 말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바울의 가르침이 지향하는 바를 확인한다. 비교적 어린 디도에게 공동체를 맡기면서 바울이 전한 권면은, 연합교회와 가정교회 안에서 목자의 삶을 살아야 할 영적 아비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를 다닌 연수로만 보면 옛날옛적에 목자가 되었어야 할 나이기에, 디도서 말씀을 바울이 내게 권면하는 편지로 읽어보았다. 디도서 2장 1-8절(메시지성경 참고)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너의 임무는 견고한 교훈에 어울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노소-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나 여자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절제와 위엄과 지혜와 건강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삶을 살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본이 되어서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의 삶을 통해 우리 밖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도저히 멸시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감복하여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너는 그런 삶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가르칠 때는 위압적이거나 강요하는 태도로가 아니라 그저 진리를 순수하게 전하고, 말은 믿음직하고 건전하게 하여라.

 

정신이 번쩍 난다. 소통하고 위로하고 온전히 세우려는 나의 노력은, 견고한 복음 메시지의 전파라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있었던가. 견지불월. 달이 아니라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앞으로 나들목에서 이어질 논의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하나님의 딸들이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림으로써 복음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담아내는 방향 안에 놓여야겠구나.

 

좀 더 예민하게, 좀 더 견고하게

여자들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남자들은 곧바로 경계의 눈빛을 띠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물론 여자들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동안 서운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원망과 불평, 억울한 마음에 공격적인 태도가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모이지도 말고 마음에 쌓인 말들을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자매들은 시들어버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병들어버릴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들과 형제들이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억압받는 형제나 자매가 없는지 좀 더 예민하게 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돌보고 채움으로써 좀 더 견고한 복음의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강한 자들은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유보하고 약한 자들은 담대히 자신의 약함을 드러냄으로써 평균케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을, 만인이 알게 되어야 한다.

 

추천도서^^

- 하나님의 딸들 (진 에드워드 지음, 죠이선교회)

-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 (김호경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 바울, 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을 넘어서 (김호경 지음, 살림지식총서377)

- 메시지(신약) (유진 피터슨 번역, 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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