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도시락 - 연필 강자와 약자 오호, 놀라운 발견. 좌담회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으며 타이핑을 한다. 역시 말과 글은 달라서,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글로 옮기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나는 전체적으로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다. 원래 기록을 맡았기 때문인데 오기로 한 패널이 못 오게 되어 일정 부분 패널 역할을 한 것이다. 가장 말을 많이 한 사람은 나이와 연차가 꽤 있는 남자 패널.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 허리를 잘라먹고 들어와서는 큰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 하지만 논리적이거나 완성도 있는 문장은 아니다. 문장성분이 뒤죽박죽이기 일쑤요, 주어부만 몇 개째 나오다가 술어부는 흐지부지되어버려 말이 되게 만들려면 내가 작문을 해야 할 판..
첫 시간 화요일 저녁시간인데 어떤 분들이 오실까 자못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거의 다 아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자매들. 첫 시간이라 자기소개와 함께 이 세미나를 신청하게 된 이유, ‘여성’과 관련한 평소의 생각들을 나눴다. 다양한 성장배경, 다양한 개인적 성향, 다양한 경험이었지만 어떤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때로 눈에 띄는 방식으로, 폭력적으로 작동하기도 했고 때로는 은근한 유리천장이기도 했다. 내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계일 수도 있고 몸이 머리를 배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들 안의 여성, 교회 안의 여성, 한국 사회 안의 여성은 자유롭지 못했다. “회장이 왜 남자여야 하나요?” 주일학교 중고등부 시절, 내년 임원단을 뽑는 총회날이었다. 목사님은 ..
가을햇볕 아래 까만 털옷을 입고 앉았다. 커피 한 잔을 타서 고개를 숙이고 볕을 쬔다. 바람도 없이 햇빛을 모으는 까만 털옷을 입고. 까만 털옷 위에 촘촘한 보풀을 고개를 숙이고 햇볕을 받으며 뜯어낸다. 이것은 기도다. 오래 입고 부딪히면서 마찰로 생긴 보풀들. 내 몸에서 보풀을 뜯어낸다. 마찰은 피할 수 없는 거잖아, 감정은 이렇게 뭉쳐져 버리지, 그럼 이제는 떼어내도 돼. 내 몸의 실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다른 몸의 실들, 어디서 날아든 깃털들, 그냥 먼지들, 서로 뒤엉켜 까만 보풀이 된 그것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것, 이것이 기도다. 볕은 따갑고 보풀은 광활하다. 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며칠을 지내다 보면 다시 또 새로운 보풀들이 올라와 온 몸을 뒤덮어버리겠지만, 그래도 오늘 떼어낸 감정의 보풀들..
개역성경으로 읽으면 화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본문들, 메시지 성경에서는 좀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성경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개역성경이 성경원문인 양 떠받들고 문자적으로 맹신하며, 이 시대의 사조를 따라 성경을 뜯어고치는 일은 천벌을 받을 대역죄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계시지만, 성경이 쓰여진 그 당시나, 개역성경이 번역되던 당시, 또 오늘날의 번역 역시, 모두 각기 그 시대의 한계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조심스럽게 성경을 가장 바르게 해석하고 번역하려는 노력이 매 시대, 매 사회에 필요하다. 디모데전서 2장, 여자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황당한 말씀(언제는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밖에 없다더니), 에서는 여자의 해산으로 구원을 가져왔다고 풀었..
2009년 10월 8일. 사회적 글쓰기 1강. 사회적 글쓰기란? 사적 글쓰기와 공적 글쓰기의 사이. 개인적으로 쓰지만 사회적으로 읽히는 경우.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글을 고치는 사람이었고 사적 글쓰기를 가끔, 개인적 감정을 풀기 위해 개인적 공간에 개인적으로 쓰곤 했다. 그건 일기 쓰기에 가깝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 우연히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다 공적 글쓰기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여전히 타이틀은 '편집자'지만, 나름 잡지의 편집권을 가지고 있고, 내 목소리를 낼 공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일기 쓰듯 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공적 글쓰기, 혹은 사회적 글쓰기는 글의 내용에 대해 책임을 요구한다. 사적 글쓰기가 내 감정을 여과없이 담아내고 내 편견을 고스란히 적용해도..
김 목사님이 교회를 옮기셨다. 빚이 잔뜩 있고 성도는 겨우 세 명뿐인 교회, 하나님의 교회가 문닫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며, 1년 전 비슷한 지경이었던 교회가 겨우 자리를 잡으려는 시점에 이 교회를 떠나 다시 맨땅으로, 아니 땅속으로 덜컥 옮기셨다.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교회가 얼마나 많으며, 문닫는 교회는 또 얼마나 많은데, 빚을 떠안으러 간다는 것인가, 원로목사님과 장로님 가족이 전부라는 교회를 왜 굳이 살리겠다는 것인가... 주일 오후, 새로 옮기신 교회에 갔다. 작지만 교회는 깨끗하고 피아노와 강대상과 드럼, 빔프로젝터, 스크린.. 기본 셋팅은 다 되어 있었다. 작은 교회들도 이렇게 다들 갖춰놓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 빈 공간만 떨렁 남았을 줄 알았는데. 왜들, 그렇게..
대학 다닐 때 죠이에서, heart라는 마임극을 했었다. 한 아이가 빨간 하트 모양 종이를 가지고 논다. 제 마음이겠지. 이러다저러다 하트는 더러워지고 구겨지고 찢어진다. 여느 사람들처럼 '네 마음을 내게 줘'라고 요구하는 예수님께 아이는 이미 많이 상처입은 마음을 쉽게 내놓지 못한다. 요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느낌이었는데, 예배를 드리다가 문득, 내 굳은 마음에 흠집(기스)이 많이 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여기저기에 치이고 받혀서 내 오래된 시계의 유리알처럼 흠집이 잔뜩 생긴 내 마음을 나는 고집스럽게 유지하느라 입을 꽉 다물고 긴장한 채로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예배에 가도 마음이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서운했었다. 불평과 변명과 투정만 나오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새롭게 하소서 주님 ..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한다. 다들 예민해지면 좋겠다. 아토피로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고 새집증후군으로 눈과 코가 고생하고, 매연에 속이 메스껍고 에어컨 바람 좀 쐬면 머리가 아프고.. 그럼 그렇게 쉽게 말하진 못하겠지. 그러나 현재로선, 그런 예민한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무시당한다. "난 무뎌서/건강해서 괜찮아"라고 말한다. 잠수함에는토끼를 키운다던가? 물 밑으로 너무 내려가 산소가 부족하거나 뭔가 문제가 생기면 예민한 토끼는 먼저 죽어버린단다. 그럼 그걸 보고 사람들은 '고놈 참 예민하네. 쯧쯧.' 이러고 말까? 곧 자기들도 위험한 것을 알고 바로 수면으로 올라온다. 우리 안의 연약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그들은 경고신호를 켜준다. 그들의 상처와 힘듦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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